햇살도 익어 고개를 떨구는 늦가을 추석감사절 주일엔 잘 아는 누가복음 17장의 열명의 문둥병자가 고침 받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내용은 잘 아시겠지만 열명의 문둥병자가 주님을 만나 병을 고침 받았으나 그 중의 한 명, 곧 사마리아인만이 주님께로 돌아와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내용이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의 수고로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곧잘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표징 중의 하나가 감사이지요.
삶의 걸음걸음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의 쓰디쓴 독초, 생의 애달픔도 많지 맛보지만, 그리나 진리의 말씀과 그 세계 안에서 생을 바라보면 우리의 생은 보랏빛이요, 황홀한 무지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삶의 기쁨과 소망, 그리고 감사를 잃어버리는 것, 그것은 결코 환경 때문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한 생명으로 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 안에, 그 생명과 진리의 세계 안에 거하면 언제나 우리는 소망으로 노래하고 겨운 감사로 가득 가슴에 흘러넘치게 됩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다 순간순간 생의 아픔을 겪는 법, 지금 저의 삶에도 이런저런 아픔이 적지 않지만, 예배 가운데 드리는 찬송 가운데 저의 영이 얼마나 주님을 기뻐하는지, 저 영혼의 깊은 샘에서 얼마나 깊은 감사가 우러나오지, 아침 이슬에 젖은 풀잎처럼 제 영이 우러 흐르는 감사의 눈물에 잠시 젖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겐 세상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비밀이 있으니 그것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평강입니다. 기쁨입니다. 소망입니다. 그리고 감사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품에 참되이 거하는 자는 언제나 기뻐하며 언제나 감사합니다. 그 하늘로부터 임하는 기쁨과 감사는 흐르고 흘러넘치는 샘처럼 우리의 영혼 가득 채우고 흘러, 두 손을 높이 들어 찬양하게 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게 하는 넘치는 희락의 불입니다. 억지나 인색함으로 드리는 고백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 어디서나, 역경에서나 순경에서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그러한 기쁨과 소망, 감사를 잃어버렸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안에 참되이 거하지 못하는 표징입니다. 다시금 하나님을 오롯이 사랑하며 그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과 참된 생명의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한 감사에 대한 말씀에 이어 성령께서는 “감사에 대한 화답”을 감동하셨습니다. 진정 어버이의 은혜를 알아 감사하는 자녀는 부모를 향한 효행을 하게 되듯, 참된 감사에는 감사로 인한 행위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다면,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과 그 말씀에의 순종과 그분의 뜻을 늘 헤아리려 함과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대한 충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분은 받은바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는 우리 사람의 속성을 조심스레 경계하고 있습니다. 열명 중에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하나뿐이었습니다.
문둥병보다 더한 몸과 영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죄의 삯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늘 잊지 말고, 늘 하나님 안에 진정 거하며 기쁨과 소망, 그리고 우러나는 참된 감사를 잃어버리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에 대한 사랑의 화답이 우리의 삶에서 믿음으로 역사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싶습니다.
눅17: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눅17:16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눅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