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를 켰어도 더운 바람만 훅훅 불어대는 찜통 더위의 밤이네요. 시원한 찬물을 온 몸에 한번 뒤집어쓰고 소로소로 여름밤이 깊어가는 가운데 주일 말씀을 적어봅니다.
오늘 주일에는 출애굽기 16장 13-21절의 말씀을 감동하셔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공궤하신 기사를 나누었습니다. 핵심되는 구절은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입니다.
사람의 육신을 삶을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일은 먹는 일인 것 같습니다. 실상 우리의 삶은 먹는 것과 참 많은 관련이 있고 또 생각해보면 적지 않게 우리는 먹습니다.
남자들이 잘 모르는 여자들의 고충은 먹거리 문제지요. 아침을 해서 먹고 돌아서면 점심은 또 무엇을 해서 먹을까 고민하며 준비해야 하고, 저녁 또한 그렇지요. 그것뿐만 아니라 차, 커피 등과 간식 등 참으로 우리의 삶은 먹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또 먹지 않으면 우리는 힘을 쓰지 못하지요. 한 끼나 두어 끼만 굶어도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눈도 맥이 없어지지요. 우리의 육신의 삶에 있어서 먹는 일은 가장 기초적이고도 중요한 일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육의 삶에 먹는 일의 중요성과 그 필요는 알지만, 정작 더 본질적인 영의 생명, 곧 영의 양식의 먹음과 필요는 잘 모르지요.
우리에겐 두 가지 생명, 곧 육의 생명과 영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이고 참된 것은 영의 생명입니다.
육의 생명은 생명임은 분명하나 참 생명은 아닙니다. 육의 생명 곧 혼은 언제나 자아와 욕망과 정욕을 좇아 행할 뿐, 그 속엔 참되고 선한 생명은 없습니다. 도리어 육이 부요하고 강건하여 부요하고 비둔하면 더 타락한 본성만 일렁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선하고 거룩한 삶은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의 생명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의 생명과 아울러 영의 생명에도 무릇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무릇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육과 영의 생명에 관한 가르침을 요한계시록에서 사데교회를 거울 삼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계3:1-3)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7-18)
또한 주님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요6:55-57)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건강을 위한 영의 양식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그것은 곧 주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이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물들어가는 것이지요.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 오늘의 만나 본문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들의 매일의 경건한 삶에 대하여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주일 분이나 한달 분량의 만나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셨지요. 그것은 매일의 영적 경건훈련입니다.
물 한 모금,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공궤하심은 얼마나 절실하였을까요. 그들은 매일 아침 광야에 나가 하나님이 공궤하신 만나를 보며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발견하였겠지요.
그들은 매일 만나를 거두었지만 또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경건을 거둔 것이지요. 먹거리가 절실한 광야, 만나를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경외, 그분의 살아계심과 함께 하심을 매일 거둔 것이지요.
만약에 한 달 치나 일년 치를 한꺼번에 주셨다면 그 와중엔 하나님을 그리 절실하게 찾았을까요. 매일의 경건의 삶이 가능했을까요.
저의 삶을 돌아보아도 가난하고 아픈 몸으로 아무런 저 스스로의 재원도 없이 살아온 신학교 시절부터 목회자로서의 삶, 십수 년의 세월, 하나님은 당신께서 실제 귀로 들리던 음성으로 약속하셨던 언약대로 비록 풍족함은 없었지만 누군가의 손길을 통하여 늘 매일의 일용함은 채워주셨습니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당신의 종이 꾸이고 빌리게 초라하게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늘 내일의 필요와 염려는 남겨두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매일의 만나를 공궤 받으며 믿음이 자라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조금씩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의 삶을 배워갑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 우리에게 늘 우리에게 다소의 부족함, 고난, 그리고 목마름은 주심은 같은 이유 아닐까요. 그래야만 우리가 매일 하나님을 찾으니까요. 당신을 의지하라는 음성은 아닐까요. 매일 당신을 찾으라는 하나님의 선한 뜻은 아닐까요.
우리에게 풍성하고 풍성한 삶이 허락되지 않음은 그 풍성함 속에서 타락하지 않을 영적 생명의 강건함이 부족함 때문은 아닐까요. 풍성함 속에서 도리어 하나님을 잃을까 사랑어린 염려를 하심은 아닐까요.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매일의 경건, 영적 양식의 필요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풍족하고 편안한 삶보다 영적 성장과 성숙을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물 한 포기 물 한 모금 나지 않는 광야에서 사람은 “하나님과 오직 그 말씀으로 사는 것”을 배워갔습니다. 우리도 삶과 매일의 경건으로 가슴 깊이 배워가야 할 참된 진리이지요.
설교가 절정으로 무르익는 시간 쯤, 주님은 성령으로 감동하시며 본문과 관련하여 몇 가지를 이르셨습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살아계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라”
“삶과 생명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아라”
“하나님 안에서의 행복을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라”
“하나님과 언제나 동행하는 삶으로 나아가라”
말씀을 맺어야 하겠네요. 오늘의 본문은 신약의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에게 매일의 경건한 삶, 곧 영의 양식과 음료를 먹고 마시는 삶이 필요함을 말해줍니다. 주님을 먹고 마심이 필요함을 말해줍니다.
둘러보면 온갖 것들이 모두 혼적인 것들, 그 속에서 우리가 영의 생명의 강건함을 유지하려면 매일매일의 경건한 삶이 필요함을 말해줍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 사람은 환경이나 조건이 아닌, “오직 하나님과 그 말씀을 살아감”을 저와 여러분 모두 배워갔으면 싶습니다.
출16: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출16: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출16: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출16:20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출16:21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